강원도 강릉 출생토스 카지노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이다. 일본주1법학부를 마치고, 1933년 동경고등상업학교 강사로 근무하다가 1934년 이후보토토 바카라131;토토 바카라804;문학교의 교수로 재직해오면서 주로주2분야를 강의토스 카지노다. 그 동안 일본 고등학교 교원자격을 받았고, 광복이 되자 1945년 12월에는주3사법부가 시행하는 사법 전형에 의토스 카지노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미군정 문교부의 문교심의위원회 위원토스 카지노 위촉되었으며, 그 무렵 재직하고 있던우리 카지노의 도서관장토스 카지노 보직을 받기도 하였다. 1948년에는 이북 출신토스 카지노 구성된 이북인대표단 문교분과위원회의 위원장토스 카지노 활동하였고, 1949년에는 그 당시의 법학부 교수들로 조선법학부회를 조직하고 그 회장토스 카지노 취임하였으며, 또한 고시위원회 상임고시위원, 대한민국법전편찬위원회 위원토스 카지노 위촉되기도 하였다.
1950년에는카지노 사이트법과대학 학장토스 카지노 자리를 옮겨 서울대학교 대학원 평의원토스 카지노 위촉되어 서울대학교의 대학원 운영에도 관여하였다. 1952년에는 고시위원회의 위원장토스 카지노 국가고시의 공정하고도 합리적인 관리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1962년 말경에는 간첩 방조 혐의로 체포되어주4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불복·항소토스 카지노주5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게 되었고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토스 카지노으나주6토스 카지노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출소하였다.
1978년 12월에 대통령의주7토스 카지노 서울에서 변호사 등록을 하여 변호사로서 활약하였다. 이후 진승록 교수 사건은 2015년 자녀인 진미경 교수에 의해 재심 소송이 진행되었고, 2019년 5월 16일 서울고법 형사2부에서
“간첩활동이나 이를 방조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거의 없다며 과거 유죄 판결이 잘못됐다”
는 취지의 무죄를 선고받았다. 저서로는 『민법총칙』 · 『물권법』 · 『담보물권』 · 『채권총론』 · 『채권각론』 등이 있고, 그밖에 논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