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목종 때 세워진 카지노 입플성은 왕이 필요로 하는 물품의 진상을 분담한 6국(六局 : 尙食·尙醫·尙衣·尙舍·尙乘·尙醞局)을 총괄하고 왕실의 내부적인 일과 보첩을 관장하였다.
그 뒤 고려의 관제를 정비하면서 카지노 입플시로 바꾸었다. 카지노 입플성 때의 직제는 판사(判事, 정3품)·카지노 입플감(殿中監, 종3품)·카지노 입플소감(殿中少監, 종4품)·카지노 입플승(殿中丞, 종5품)·카지노 입플내급사(殿中內給事, 종6품)였었으나 카지노 입플시로 되면서 카지노 입플감은 카지노 입플윤(殿中尹)으로, 카지노 입플소감은 카지노 입플소윤(殿中少尹)으로 하였다.
그리고 그 아래 이속(吏屬)으로 주사(主事, 4인)·영사(令史, 4인)·서령사(書令史, 4인) 및 산사(算士, 1인)가 있어 실무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1298년(충렬왕 24) 카지노 입플시는 종정시(宗正寺)로 바뀌고, 판사는 폐지되고 윤은 경(卿)으로, 소윤은 소경(少卿)으로 하고, 새로이 주부(注簿, 종7품)를 두었다.
이 때 카지노 입플시가 종정시로 개칭된 것은, 당시 원나라의 간섭에 의하여 실시된 관제개혁이 주로 고려의 전통적인 관부명칭을 소멸, 격하시키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아 카지노 입플시 역시 원래의 카지노 입플성의 흔적을 없애려 하였던 데서 종정시로 바뀌었다고 짐작된다.
그 뒤 국권회복을 위한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의하여 여러 차례 관제개혁이 있었으나 카지노 입플성 체제만은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종부시(宗簿寺)로 하여 왕실의 결속과 그 존엄성을 지키는 일을 담당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 다시 카지노 입플시로 하였으나 1401년(태종 1) 이래 종부시로 하여『선원보첩(璿源譜牒)』을 편찬하고 종실의 허물과 잘못을 규찰하는 관청으로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