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영(子榮), 호는 수재(睡齋). 유의(柳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종식(柳宗植)이다. 아버지는 유문통(柳文通)이며, 어머니는 이추(李抽)의 딸이다.
1493년(성종 24) 성균관 유생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이때 유생 열 사람 중 유독 유인귀만 경서에 달통하였으며, 세 사람은 약간 서툴렀고 나머지는 경서에 밝지 못하다고 하여 유생에 대한 경서강독과 장학제도를 철저히 할 것 등의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1494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503년 홍문관수찬이 되었으며, 이듬해 사간원 정언으로서 폐비 윤씨의 추숭을 반대하였다가 회덕으로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이후 해배되었고, 1509년(중종 4) 홍문관교리로 승진되었다.
이듬해 장령 · 사간원사간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525년 봉상시정으로 황해도재상사(黃海道災傷使)가 되어 그곳 주민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1527년에 성균관대사성에 올랐으나 며칠되지 않아 부적합하다고 대간이 상소하자주1같은 해에 예조참의가주2저서로는 『수재집(睡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