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의 첫 해일(亥日)에 시작하여 해일마다 세번에 걸쳐 빚는다고 해서 삼해주라고 하며, 정월 첫 해일에 담가 버들개지가 날릴 때쯤 먹는다고 해서 유서주(柳絮酒)라고도 한다. 고려 때부터 제조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약주이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산가요록(山家要錄)』 ·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일명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 『요록(要錄)』 · 『산림경제(山林經濟)』 · 『주방문(酒方文)』 · 『양주방(釀酒方)』 등 많은 문헌에 그 제법이 기록되어 있다. 『추관지(秋官志)』에는 형조판서 김동필(金東弼)이 삼해주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서울로 들어오는 쌀이 삼해주 만드는 데로 쏠려 들어가니, 이를 막아달라고 진언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는 널리 제조되었고 그 방법도 다양하였다. 조선시대 중엽 이후는 소주의 술덧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일성록(日省錄)』에는 “언제부터인지 정월의 첫 해일에 빚던 것이 어느 해일에나 빚게 되고, 또 약주보다 소주의 원료로 쓰이게 되어, 요즈음은 삼해주라 하면 소주의 밑술을 가리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해주 만드는 법은 정월 첫 해일에 찹쌀 석 되를 백번 씻어 가루를 만들어 죽을 쑤어 식힌 뒤에 누룩 한 되를 섞어두었다가 두 번째 해일에 흰쌀 서 말을 백 번 씻어 가루로 만들어 물송편을 만든다. 이것을 차게 식혀 먼저 만든 밑술에 섞어 넣는다. 그리고 세 번째 해일에도 다시 한번 덧술하여 빚는다고 『규곤시의방』에는 기록하였다.
『산림경제』에서는 정월 첫 해일에 찹쌀 한 말을 백 번 씻어 가루로 만들어 묽은 죽을 쑤어 식힌다. 여기에 누룩가루와 밀가루 각 한 되를 섞어서 독에 넣는다. 다음 해일에 찹쌀과 멥쌀 각 한 말을 백 번 씻어 가루로 만들고 이것으로 술떡을 푹 끓여서 숱밑에 섞는다. 또 세 번째 해일에 백미 다섯 말을 백 번 씻어 떡으로 쪄서 식힌 것을 끓인 물 세 양푼에 풀어서 다시 덧술하여 3개월 동안 익혀낸다고 하였다.
특히, 서울의 동막 근처가 물맛이 좋아 삼해주의 명산지로 알려져 있다. 1985년 국세청에서 서울지방의 민속주로 지정하였다가 1993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삼해약주의 권희자와 삼해소주의 이동복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하였다.